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소니 퍼킨스 (문단 편집) == 상세 ==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던 연극배우였는데 호평을 받아 할리우드에 입성하게 되었다. 할리우드 데뷔 초기였던 50년대 말 좋은 연기력으로 라이징 스타로 떠올랐다. [[오드리 헵번]]과 영화 '녹색의 장원(Green Mansions)'을 같이 찍을 만큼 50년대말부터 유명했었다.[* 참고로 감독은 헵번의 전남편 멜 퍼레어.] 당시 계약을 맺었던 [[파라마운트]] 스튜디오에서도 퍼킨스를 '''차세대 [[제임스 딘]]'''으로 밀어주며 푸쉬를 아끼지 않았다. 가수활동도 병행했는데 그가 부른 "Moon-Light Swim"은 빌보드 HOT100 차트에서 24위에 오르는 등 가수로서도 소소한 인기를 누렸던 팔방미인. [[동성애]]에 대한 편견을 고발한 연극 '차와 동정'에서 상당히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. 1960년 [[앨프리드 히치콕]]의 '[[싸이코(영화)|싸이코]]'에 캐스팅 되었고, 이 영화에서 보여준 [[노먼 베이츠]] 연기는 그의 인생을 바꾸게 되었다. 그는 뛰어난 연기력으로 배우들에게 깐깐하기로 유명했던 히치콕 감독의 맘에 드는데 성공했다. 퍼킨스는 각본을 받을 당시 노먼 베이츠 역이 자칫 배우로서 자신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짐작하며 고민했지만, 히치콕 감독은 그래도 한 번 도전해보라고 그를 북돋아 주었고, 이후 결과는 알다시피... 노먼 베이츠 캐릭터 구축에 있어 퍼킨스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고, 배우들에게 인색하기로 소문난 히치콕 감독이 예외적으로 그에게 많은 재량권을 주었다고 한다.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연기가 너무 뇌리에 박히는 바람에 노먼 베이츠 이미지가 고착되어 한동안 유럽에서 활동하며 커리어를 쌓아야 했다. 이듬해인 1961년 [[잉그리드 버그먼]]과 함께 주연한 '이수(GoodBye Again)'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이탈리아, 프랑스의 유명감독이나 배우, [[오손 웰스]]와도 영화를 찍으며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고 연기력을 인정받았다. 하지만 미국에서는 여전히 싸이코의 이미지를 원하고 있었고 그것은 그의 커리어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. 그래도 조연, 단역 가리지않고 사망하기 직전까지 꾸준히 활동한 걸 보면 연기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대단한 배우인 것만은 확실. 말년에 찍은 TV 미니 시리즈 "나폴레옹과 조세핀"에서는 탈레랑 공작으로 나와 열연했다. 에로이카에서 미소년(...)으로 나온 것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충격이지만 퍼킨스판 탈레랑이 더 실제 인물에 맞다. 또한 화려한 배우 캐스팅으로 잘 알려진, [[애거서 크리스티]]의 추리소설 원작을 기반으로 한 영화 [[오리엔트 특급살인]]에도 출연했다. 1992년 에이즈로 60살에 세상을 떠났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